1. 판단력비판은 어떤 작품인가? (영향사)
- F. 쉴러(1791.3.3. 친구 쾨르너에게 보낸 서한): “내가 요즘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자네는 모를 걸세. 바로 칸트일세.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구입해 읽고 있는데 그 명쾌하고 풍요로운 내용이 나를 매혹시켜 점점 더 그의 철학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하고 있다네. 이성비판과 같은 철학적 체계들은 별로 친숙치도 않고 또 너무 어려워 시간을 빼앗아 가지만, 나 자신이 이미 미학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보았고 또 많은 경험도 있기에 판단력 비판은 훨씬 쉽게 읽고 있지. 간단히 말하면 KU는 내가 오르지 못할 산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좀 더 세심하게 연구해 보고자 하네.”
(1792.1.1. 같은 이에게): “나는 요즘 커다란 열정을 갖고 칸트철학을 공부하고 있지. 나는 그것을 철저히 규명할 때까지는 내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 단호히 결심하였다네.”
⇒ 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 (1795)
- 괴테: 예술론과 자연과학(생물학)적 탐구의 결합에 대한 철학적 기초를 KU에서 찾음.
- H. 아렌트, J.-F. 리오타르: “반성적 판단력” 개념 등에서 그들의 정치철학적 도구를 발견.
- 목적론에 관한 내용은 당연히 역사철학과도 긴밀.
∴ 매우 상이한 방향에서, 상이한 시대에 지속적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수용.
2. KU가 칸트(1724-1804)철학 내에서 & 철학사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위치
전자 - ①발전사적인 의미: 미의 문제 · 목적론적 사고방식에의 관심
②체계적 의미: 비판철학 전 체계의 완성?
후자 - 칸트와 동시대 및 근세철학에 불러일으킨 반향. 현대의 관심. → 사실상 이 강의의 범위를 넘어섬.
2.1. 칸트와 미학
- 미(현상)에 대한 칸트의 관심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존재.
- Beobachtungen über das Gefühl des Schönen und Erhabenen (1764):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칸트의 관심과 지식수준을 보여주는 작품. 주로 심리학(인간학)적이고 경험론적인 방향에서 미현상을 다룸.
- 기타 작품: 논리학, 형이상학 강의 등에서도 인식의 문제, 인식 능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
* A. G. Baumgarten - 미현상의 경험을 인식과 결부시켜 규정. “명석”(clara)하지만 “판명(distincta)하지 않은 인식(confusa). 판명성은 개념형성의 조건이지만 대상의 표상을 추상화하는 가운데 그 풍요로움을 잃게 된다.
G. F. Meier - “아름다운 인식”(schöne Erkenntnis, cognitio pulchra vel aesthetica): 경험적인 인식이면서 역시 “distincta”하지 않은 인식. 인식의 다양한 내용들이 서로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인식.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생동감 있고 풍요로운 인식. (porno?)
- 1770년 교수취임논문을 보완하려는 계획을 설명하면서 M. 헤르츠에게 보낸 편지(71.6.7)에서 “감성과 이성의 한계”라는 제목의 저작 구상 중이며 “취미론”의 본질까지 다루겠다고 밝힘. 1772.2.21.에는 “감정, 취미, 판단력의 원리들과 그것들이 가져오는 결과 즉 쾌(快), 선(善), 미(美)”에 관해서 이미 많이 생각해왔다고 함. But, 3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던 보완작업은 10년을 걸려서야 KrV(1781)로 나타남.
- KrV의 초판까지 미에 대한 판정능력을 경험적인 것으로 간주. → 미 현상의 탐구는 선험철학의 범위 밖.
- KrV의 B판(1787, B 35, 주석), KpV(1788)에서는 취미판단의 선험적 원리를 언급.
- 칸트의 착안점: 미에 대한 판단에 주목. 인식적 또는 논리적 판단(“이 분필은 흰색의 원통형 막대이다”), 도덕적 판단(“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은 아주 몹쓸 짓이다”)과 구별되는 미적 판단(취미판단) 고유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함. → 미적인 것 자체, 아름다움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어떤 것을 “아름답다”라고 판단하는 우리의 판정 능력을 문제 삼은 것.
2.2. 칸트와 목적론
- KU의 구조와 관련해 줄곧 논란되어 온 부분: 미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의 결합
- “두 권으로 출판했어야 했던 상이한 주제들”(H. Cohen); “barocke Vereinigung” (Schopenhauer)
- 괴테: 미학의 원리와 목적론적 원리의 결합 속에서 시인이자 자연 탐구가로서 자신의 활동이 철학적인 보장을 받게 된다.
- 『보편 자연사와 천체 이론』(1755): “모든 천체의 형성과 그 운동원인, 간단히 말해 우주의 현 시스템의 기원을 알아내는 것이 하나의 잡초나 누에고치의 생성을 기계적 원인들에 의해 분명하고 완전하게 해명하는 것보다 더 수월하다.” → 칸트가 자연과학의 메커니즘에 몰두하면 할수록 목적론적 관점에 대한 관심도 깊어갔다. (KrV의 “선험론적 변증론” 끝부분에서 자연에 대한 목적론적 고찰방식을 인간이성의 통제적 이념과 결부시킴)
- 이 세계 내의 사물들은 기계적 자연법칙(뉴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2.3. KU의 체계적 위치
- KU의 출간은 비판철학 체계의 완성을 의미.
①제1비판: 이론인식(수학·자연과학)의 세계를 탐구. 수학적, 자연과학적 인식의 보편적 규칙들과 그 타당성의 근거와 한계.
②제2비판: 실천의 문제. 도덕적 가치와 행위의 기준. 욕구 능력인 의지의 법칙 내지 자율의 규칙을 탐구.
- 두 비판서들은 크게 ‘자연’과 ‘자유’라는 두 영역(서로 다른 두 질서)을 독립적으로 다룬 것. 전자는 현상계(감성계), 후자는 예지계(초감성계, 물자체계)
- KrV: 주요 능력인 지[오]성(Verstand, 이론이성)이 스스로 선험적인 법칙을 부과함으로써 현상계의 대상들(자연)에 대한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임. 이때 물자체는 인식 불가.
- KpV: 실천이성(의지)는 KrV이 남겨둔 영역, 즉 물자체계에 관여하는 능력이다. 특히 도덕적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자연으로서의 인간이 아님)을 다룬다. 물자체로서의 인간은 (지성의 기능에 뿌리를 둔) 인과적 자연법칙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법칙(도덕법)에 따른다.
- KU: 위의 서로 다른 두 세계, 두 질서를 화해시키고 통일시키려는 의도. 자연과 자유의 화해와 통일은 그 양자들 위의 제3의 영역을 통한 것이 아니다. ‘통일’보다는 ‘이행’(Übergang, transition)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다. → “자연 개념의 영역으로부터 자유 개념의 영역으로의 이행”(B LVI)
2.4. 자연계로부터 자유계로의 이행
- 기본적으로 자연계에 대한 자유계의 우위 내지 지배(지성 또는 이론 이성에 대한 실천 이성의 우위)를 인정 → 필연적 법칙에 따르는 기계적 자연이라는 관점이 극복되고, 자유에 의해 설정된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또 그것에 의해 설계된 자연이라는, 소위 ‘목적론적 자연관’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세우려는 시도.
- 자연계조차 기계론적으로만 고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극단적인 기계론(결정론)과 비결정론이 대립하기만 한다면, 인간이 과연 자연의 일부로서 그 자연 질서 내에서 그것과 별개인 또는 자연 질서를 초월하여 명령하는 도덕법칙을 따라 행동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 KrV에서 칸트가 제시한 입장은 극단적인 기계론·결정론은 아니다. But, 자연계에서는 예외 없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인정했다.
- 그러한 주장만으로도, KpV에서 말하는 도덕법칙에 따르는 행위 즉 자율적인 행위 역시 자연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므로 지성적 자연법칙에 의해서만 규정되어야 한다.
- 물론 KpV에서는 실천이성의 요청들(자유, 영혼불멸, 신)이 도덕 행위의 성립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특히 ‘자유’ 개념이 중요. → 실천적 신앙·이성 신앙 차원의 해결일 뿐, 자연 경험에 기초하여, 인간이 자유로운 행위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는 도덕적인 목적이 자연 내에서 현존 가능하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 이를 설명하려면, 동일한 행위가 자연법칙에 의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유의 법칙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것이 실제로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자연의 질서가 자유의 질서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설명되어야 한다. → ‘반성적 판단력’ & ‘자연의 합목적성’
- 인식의 문제와 실천의 문제를 인간의 심성능력(지성 내지 이론 이성, 의지 내지 실천이성)을 비판함으로써 해결하려 한 것처럼, 제3비판도 그 능력 중 하나인 판단력을 비판.
※ 판단력이란?
- KrV에서는 감성, 지성과 더불어 인식능력의 하나이지만, 광의(廣義)의 지성 속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 감성은 직관을 제공, 지성(협의[狹義])은 직관의 표상들을 결합하여(사고작용) 대상의 개념을 제공.
- 직관은 시간·공간 형식을 통해 주어지고, 직관표상들의 결합은 지성 개념들, 즉 범주에 의해 이루어짐. 범주는 결합의 규칙, 사유의 규칙.
- 판단력은 감성을 통해 주어진 낱낱의 직관 표상들(붉음·부드러움·향기로움·사랑스러움…)이 어떠한 범주에 의해 결합(정돈)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능력 → 규정적 판단력.
Ex) ‘실체’의 범주에 의한 결합 → 붉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사랑스러운 어떤 사물에 대한 표상을 얻게 됨.
‘원인’의 범주에 의한 결합 → 붉은 빛(향기로움)이 부드러움(사랑스러움)의 원인이라는 표상을 얻게 됨.
∴ 판단력은 어떤 것을 (결합·사유의) 규칙 하에 포섭하는 능력 또는 특수를 보편에 포함된 것으로 사유하는 능력.
- KU에 오면 칸트는 규정적 판단력과 구별되는 반성적 판단력을 소개한다.
- 전자는 규칙(원리·법칙), 즉 보편이 주어져 있을 때 특수를 즉 어떤 개별 사례를 그 보편 아래에 포섭하는 능력. 후자는 특수만 주어져 있을 때, 그 특수에 대하여 보편을 찾아내는 능력.
- 전자는 지성개념(범주)이라는 인식주관에 주어진 규칙을 갖고 경험에서 주어진 다양한 직관을 포섭, 정돈하여 인식을 가능케 함. 주관 → 객관. 도덕적 선의 실천도 마찬가지.
- 후자는 다양한 직관들로부터 그것들을 통일시킬 수 있는 규(법)칙성을 찾아 나아가는 능력. 객관 → 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