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etc.

Krebs 9 (2025.4.29)

Kant 2025. 4. 29. 22:40

방사선 종양학과 치료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에서 마주치게 되는 환우들의 모습은 크게 두 카테고리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그룹은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케이스로, 어두운 안색에 누가 봐도 화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른 사람의 존재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몸짓으로 대충 환자복이나 사복을 뚝딱 갈아 입고 나가버리는 경우다. 난 처음에 조금 어색하고 뻘쭘했던 게, 그래도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이니 다른 건 몰라도 뭔가 병력이나 치료 또는 병원, 의사 등에 관한 짤막한 정보 정도는 예의상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목례 같은 간단한 인사조차 교환할 틈도 주지 않고 대부분 밖으로 휙~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해 못할 현상은 아니다. Krebs 진단 받고 방사선 치료 때문에 온 사람들이니 한가하게 서로 인사하고 덕담을 나눌 처지는 아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치료 경험 한 조각 공유해줄만한 작은 친절함 또는 배려가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다른 그룹은 전자보다는 훨씬 소수인데, 약간 들뜬 듯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처음 보는 터라 가벼운 인사도 나누지 않은 사이인데 불쑥불쑥 자신의 경험이나 사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어떤 환우는 언제 어떤 교수에게 진단을 받았고, 그 교수가 Krebs이긴 해도 아직 초기이니 한동안 관찰요법만 해도 된다고 했는데, 수 개월만에 본인이 불안해 적극적인 치료 개입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래서 오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환우는 이미 수년 전에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되었으나 최근 정기 검사 결과를 놓고 담당의사가 완벽을 기하기 위해 다시 치료 제안을 했다 등등.

이 그룹 사람들은 내 관찰로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서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줄 상대를 찾고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환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몸가짐 역시 겉보기에는 활기 넘치는 것 같지만 그건 그만큼 내면의 불안함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건 순전 나의 뇌피셜일 뿐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그러는 너는 어느 그룹에 속하냐고?    

당근 첫째 부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인상이야 늘 그렇듯 우거지상이겠고, 다만 병동이든 탈의실이든 치료실이든 약간의 직업의식 같은 건 남아 있을테니 아마도 주변 관찰하는 습관은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며칠 전 이런 내 관찰 보고를 받은 와이프 가라사대, "아니 사내들도 그려? 그렇게들 불안한가?"

나 왈, "수컷이라고 벨 수 있나, 암은 암이니께. 오죽허먼 치료비를 다 깎아 주것냐."

'산정특례' 제도는 정말 고마운 제도다. 물론 그런 제도 자체를 모르고 살다가 갈 수만 있다면야 그게 가장 바람직하겠지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