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Nationalism

Kant 2007. 7. 20. 10:01

Nation이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nationalism”의 번역어이지만, “nation”은 우리말의 “민족”으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Nation이라는 어휘 역시 많은 정치 철학 용어들의 경우처럼 그 정의가 쉽지 않은 개념이다. 심지어는 nation이라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nation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또 각 nation이 그들 각각의 독립적 정치 제도 집단(국가나 연방 등과 같은)을 통해 스스로를 통치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nation은 그 정치 제도와는 구분되어 존재하며 또 그것보다 우선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원상으로는 “nascor”, 즉 “출생하다”, “낳다”에서 유래. 라틴어에서는 가끔 “civitas”, 즉 “시민”과 대립하여 사용됨으로써 - “거칠고 야만스럽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받은 것은 18세기 이후,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이다. Emmanuel-Joseph Sieyès가 국민의회를 “Assemblée nationale”로 명명한 것을 비롯해서 “armée nationale”, “éducation nationale”, “garde nationale”, “fête nationale”, “Viva la Nation!” 등 과거 “royal”이 차지했던 위치를 nation이나 nationle이 대신하게 되었다.

Nation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 (다른 집단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분하여 독자적인 통치 질서의 지배 하에 자신들을 두려는 사람들의 집단) 에서 출발할 경우, 그러한 집단의 결속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대략 두 가지 방향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1) 주관적 관점: nation이란 본질적으로 그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의지(의식, 일체감)에 의해 자발적으로 뭉쳐진 연합체라는 주장.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각 구성원들이 특정 그룹의 사람들과 연합하기를 원한다는 것일 뿐 그 이유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2) 객관적 관점: nation이란 종족, 언어, 종교, 성격, 역사, 지리적 위치 등과 같은 객관적인 특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입장. 이 관점에 의하면 어떤 객관적인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아직까지 독자적인 nation이나 정치 공동체를 이룰만한 의식이나 욕구를 갖지 않는 nation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 관점의 경우 우리가 현재 하나의 nation으로 인정하고 있는 공동체들의 특징들을 위에서 열거된 항목에 따라 검토해보면, 그 기준을 만족시키는 사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어는 서로 다른 여러 국가들에서 사용되고 있고, 벨기에나 스위스 같은 나라는 2 개 이상의 언어 사용 국가들이다. 주관적 관점의 단점은 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특정 그룹의 사람들과 연합하려는 지를 명쾌히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Benedict Anderson은 Imagined Communities, London 1990에서 nation들은 그 존재를 집단적인 상상 행위에 의존하고 있는 “imagined communities”라고 했다. 이때 상상 행위는 그 구성원들이 특정 nation에 속한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책, 신문, TV 등 미디어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는 것. 20세기의 비극적 역사 경험은 상당수의 철학자들로 하여금 nation이나, national identities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nation의 정체성은 자주 역사적 신화와 결합하여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현재 사건들의 연속성을 강조하려 한다는 것. 예컨대 실제로 우리는 13,4 세기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 이웃해 살면서 우리를 박해하고 있는 적들과 영웅적인 대결을 했다는 식으로 설득을 받게 된다. ②모든 구성원들로 하여금 national identities의 일부를 이루는 특정한 문화 유형에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그들의 동질성을 과장한다. ③강력한 정치 리더들은 미디어 조작을 통해 그들의 national identities를 조작하기 쉽다. 물론 없었던 nation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들의 영토 경계가 그때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했다는 등으로 해당 nation을 설득할 수 있다. 또 오랫동안 자국 영토 내에 거주해 온 소수 인종 그룹을 같은 nation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축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nation 또는 nationalism은 정치 엘리트들이나 권력 주체들이 이른바 “위로부터” 만들어낸 “신화”라는 주장이 큰 설득력을 지닌다. 이러한 입장에 의하면, nation은 “원초적이거나 불변의 사회적 실체”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에서 때때로 등장하는 nationalism이 과거의 문화로부터 nation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러한 문화를 조장하거나 말살하려 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볼 경우, nation이 국가나 nationalism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Nationalism의 전개

Nationalism은 주로 19세기와 20세기 특징적인 현상으로 등장해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구약의 유태민족이나 고대 희랍에서도 특징적인 기질이나 성격에 의해 nationalistic superiority가 의식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로마 시대에 바람직한 덕목으로 간주되었던 애국심patriotism은 nationalism과는 여러 점에서 구분되지만(예컨대 애국주의는 자의식을 지닌 nation을 꼭 전제하지는 않으며, 적극적인 정치의식이나 행위 결단 등과 상관없이 그저 순수하게 수동적인 민족 감정 차원에 머물 수 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특별한 의무를 빚지고 있으며, 이방인들로부터 기꺼이 그들을 보호하고 방어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근대의 nationalism은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일부 학자들은 그 지적 연원을 역사주의에서 찾기도 한다. 역사주의는 언어, 사유, 문화, 공동체, 역사 등의 견지에서 각 사회의 독특성을 인식하고, 이를 민족이라는 공동체 개념과 결부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상층계급 혹은 중간계급의 이데올로기였던 nationalism이 크게 부각되고 대중 운동이 된 데에는 산업화의 진척과 사회주의의 등장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기의 nationalist들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자유주의자들로서 입헌적 자유와 대의 정치의 확립을 시도한 소수 지식인 및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이들은 nation이 적법한 정치 권위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때까지 군주나 황제에 속한 정치적 권위를 민중에 귀속시킬 것을 주장하는 [근대 민주주의] 이론들과 nationalism을 결합시켰다.

루소는 민중의 일반의지가 입법권의 유일하게 적법한 근원이며, 모든 시민들이 무엇보다 앞서서 그들의 조국을 사랑하도록 교육받아야 한다고 함으로써 19세기의 좀더 극단적인 형태의 nationalism을 예견했다. 한편 19세기 낭만주의 경향의 독일 nationalism은 각 nation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고유의 정신과 특별한 운명을 가진다는 신념을 내세웠다.

헤르더는 언어 이론을 통해  각 nation이 그 고유문화의 담지자로서 그 안에서만 인간의 자기완성이 달성된다고 했다. 그는 프러시아의 공격적인 군사정책에는 공감하지 않았으나, nationality와 국민의 자기 통치(국민주권)의 결합을 주장했다: “각 nation의 자유의 화환을 이루는 장미들은 그들 자신의 손으로 꺽은 것이어야 하며, 그들 자신의 소망, 기쁨, 사랑으로부터 행복하게 성장한 것들이어야 한다.”

헤르더의 문화적 nationalism은 피히테의 후기 사상에서 정치적 nationalism과 결합하게 된다. 그는 각 nation들이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닌 유기적 전체라고 보았고, 개인은 그들의 nation에 대해 최고의 충성을 빚지고 있으며, 각 nation은 고유의 사명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nationalism과 국민주권의 결합을 약하게 만들었는데, national 리더들이 강력하고 단결된 국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교육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 단결을 위해 국내적으로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고 nation 고유의 사명이라는 미명하에 이웃 국가들에 대한 공격 행위를 정당화하는 권위적인 형태의 nationalism의 싹을 내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Giuseppe Mazzini, J. S. Mill 등의 nationalism은 자유로운liberal 형태의 nationalism으로 볼 수 있는데, 정부의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적인 제도들을 운용함에 있어서 national한 의식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모든 nation들의 동등한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nation 고유의 사명” 같은 것에 반대한다. 오히려 nation 고유의 문화가 가장 잘 번영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표현 등의 자유를 강조했다.

19세기 프랑스 나폴레옹의 지배가 막을 내리면서 독일, 이태리 등 민족국가들의 통일 운동이 활발해지고 산업화의 가속화와 더불어 노동자 계급의 이익 반영이 정치적 이슈로 되면서 자유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과 좌파 사이의 완충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로써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는 국왕의 전제와 무산대중의 지배 내지는 무정부 상태를 피하기 위한 중간계급의 正義적 질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을 거치면서 보수 집단은(귀족 계급이나 프랑스 혁명 이후 득세했던 사람들로서 부르주아)  nationalism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같은 해의 6월 봉기는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평가되기도 함.) 에 대한 투쟁에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간주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를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농민과,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를 두려워한 쁘띠부르주아(수공업자, 소상인, 사무원, 전문인, 하급관리)를 배타적이고 전투적이며 인종주의적, 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로 결합시켰다. 그리하여 민족의 권리를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던 자유주의적인 nationalism은 점차 민족국가의 이념을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만드는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nationalism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자유주의적 nationalism에서 국가는 입헌적 민주국가를 통해 자유와 자결, 평화를 실현하려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나, 일단 민족국가가 실현된 뒤의 현실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후의 민족주의는, 특히 19세기 후반 대불황기의 위기와 불안 속에 살았고 경제적으로 상대적인 약자였던 쁘띠부르주아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들은 대자본과 사회주의 모두에 적대적이었고 반유태주의의 주요 지지 세력이었다. 이들에게 배타적인 nationalism은 산업화한 대중사회에서의 정치적-사회적 압박에 대한 심리적 탈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국내의 갈등으로부터 그들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민족적 충성심, 제국주의적 모험이 그들의 관심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이후 20세기의 nationalism의 역사는 배타적 nationalism과 자유로운 형태의 nationalism의 투쟁으로 읽힐 수 있다. 후자는 나중에 Woodrow Wilson의 민족 자결권 독트린에, 그리고 전자는 독일, 이태리의 파시즘에 반영되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Nationalism에 관련된 윤리적 정치철학적 문제들 

①우리는 우리의 동료 구성원들에 대한 특별한 의무들을 가지는가?
②민족자결권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나?
③국경분쟁이나 소수민족들의 분리주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하는가?

①의 문제는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도덕성의 요구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리주의자들이나 칸트주의자들 모두 윤리적 보편주의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 “동등 대우”에 대한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에 대한 관계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들의 관심을 동등하게 고려하고 존경할 것 - 이것은 일종의 cosmopolitanism과도 연관된다. 그러나 그러한 윤리학자들 중 다수는 일상적인 도덕적 태도가 엄격한 보편주의와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보편적인 관점의 의무도 우리가 [우리와 가까운] 소수의 복지에 대한 의무를 수행함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특정한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일종의 계약에 의해 서로에 대한 특별한 의무를 지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왜 내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훨씬 더 가난한 사람들보다 내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특별히 고려해야하는지, 또 그것은 수정해야할 편애가 아닌지를 문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와 연관해서 Alasdair MacIntyre는 그의 글 “patriotism은 덕인가?”(1984)에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의무에 관한 물음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②의 물음과 관련해서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은,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질, 즉 그것이 법에 의해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는가이지 그것의 뿌리가 무엇이냐(우리 자신에 의한 통치이냐 타자 그룹에 의한 통치이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nationalism의 대답은, 특정 nation 고유문화의 보호와 장려는 그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의 대표자들에 의해 가장 잘 성취된다는 것.

③이것은 경우에 따라 그에 대한 해법이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소수 민족이 더 커다란 국가 안에 자리하고 있을 때, 민족 자결권 주장자들은 국가의 해체를 막기 위해 그 소수 집단에게 그들 자신의 동일성과 문화를 보호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한 국가 안에 둘 이상의 개성이 뚜렷한 nation들이 각각의 지역 기반 위에 존립하고 있을 경우에는 그 각각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독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영토적 기반 없이 흩어져 살고 있는 소수 nation의 경우는 그들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분산의 원인을 제거시킴으로써 - 예컨대 종교의 역할을 감소시키는 등과 같은 - 장기적으로 집단화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Dierse, U. u. Rath, H., “Nation, Nationalismus, Nationalität”, in: Historische Wörterbuch der Philosophie, Bd. 6, Basel & Stuttgart 1984, Sp. 406~414.
Miller, David: “Nation and Nationalism”, in: Routeledge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 6, London & New York 1998, pp. 657~662.
홉스봄, E. J. (강명세 역),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창작과 비평사 1994.
배영수 편, <서양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