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아리스토텔레스와 노예, 그리고 장문의 각주

Kant 2011. 12. 26. 11:48

전에 블로그 초기화면으로 쓰던 렘브란트의 “the Philosopher in Meditation”을 다시 보게 된 건 순전 아리스토텔레스 때문이었다. 그저 렘브란트 특유의 은은한 색조와 명암이 주제에 맞는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옥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읽다 보니 갑자기 이 그림이 다시 떠올랐고, 전엔 안 보였던 게 보였다. 바로 오른 쪽 밑 어둠 속 희미한 그림자처럼 쭈그리고 앉아 벽난로인 듯한 곳에 불씨를 고르고 있는 존재!



그래, 그림 중앙의 철학자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간과했던 존재는 그가 philosophieren 내지 theorein할 수 있게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일상의 노동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었던 자, 그렇다 그의 노예였던 것이다!

이 그림을 이렇게 바라본 사람은 아마도 내가 처음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론에 대한 비판은 계속 있어왔지만,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에겐 터부였던 모양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고전철학 비전공자의 눈에 비친 그의 편협한 인간관을 지적한 논문에 대한 심사평들을 받아보니 그런 판단이 선다. 하는 수 없이 볼품없는 장문의 각주를 첨부할 수밖에 없었다.



익명의 논문 심사자는 이 논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본성론은[= 을?] 노예이론에서 끌어내어 칸트와 비교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의를 훼손하고 오해시킬” 여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 다른 심사자는 “노예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상세히 분석하는 부분은 …… 논문 전체의 문제의식과 관련해서도 그 필요성이 잘 드러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이 논문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사상에 대한 국내 철학계의 연구 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은 큰 문제점이므로 반드시 시정”할 것을 지적했다.

논자가 참고했으나 애초 참고문헌에서 밝히지 않았던 국내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비교 연구로는, 노영란의 「의무로부터의 행위와 유덕한 사람의 행위에서 행위를 위한 이유의 성격에 대한 비교 연구」, 『철학연구』 80(2008, 111-132)와 황경식의 「도덕 체계와 사회 구조의 상관성 - 덕의 윤리와 의무 윤리의 사회적 기반 -」, 『철학사상』 32(2009, 223-261), 그리고 이진우의 「정치적 판단력 비판 -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를 중심으로 -」, 『철학연구』(대한철학회편) 48(1992, 21-54) 등이 있음을 밝힌다. 이외에도 논자는 두 철학자들의 실천철학에 관한 포괄적인 비교 작업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실천철학, 양자택일인가? 』라는 주제로 김종국에 의해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첫째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윤리이론을 행위이론의 관점에서 비교하고 있고, 둘째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매킨타이어의 덕 윤리와 칸트·롤즈적 의무·규칙 윤리의 상호 보완 가능성에 주목할 뿐 두 철학자들의 인간관을 직접 다루지는 않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의를 훼손”할 가능성 및 “논문 전체의 문제의식”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서 논자는 이진우의 논문을 예로 들어 답하고자 한다. 그는 위 논문 30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시민은 생존에 필요한 생활수단이 생산되는 사적인 영역을 초월해서 공동체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삶의 본질을 실현하는 지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로 이해된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인간에 내재하는 본질을 실현하는 지배의 형식으로서 …… 개인이 공동체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의 구체적인 공간’으로 이해된다. …… 평등한 시민들의 다원성과 다양한 시민들의 평등성을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규범적 토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다.”

이처럼 그는 분명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지지를 의식한 듯 “시민은 생존에 필요한 생활수단이 생산되는 사적인 영역을 초월”한다는 점을 살짝 언급하면서도, 그 정치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의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의 구체적인 공간’”이자 “다양한 시민들의 평등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규범적 토대”라고 한다. 이러한 진술은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들의 정서를 배려한 데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논문의 핵심 주제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기는 하지만, 논자가 보기에 그는 뚜렷한 근거의 제시 없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노예론이 가질 수 있고 가지고 있는 실천철학적 함의를 간과하려 하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의 이러한 불문율적인 시각을 문제 삼으려는 의도 또한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