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TV 뉴스 보기가 힘들어진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매스컴이 요즘처럼 연이어 진저리나는 사건 소식을 전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학생 때 처음 가 본 “이작도”는 '조용∼함' 그 자체였다. 저녁 10시 경엔 아예 전깃불도 나가고 그야말로 잠이 오든 말든 자리에 눕는 것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던 곳. 대낮에 이장님이 “소란스럽게 해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마을 안내 사항을 방송하던 곳. 수년 전 돌아본 청산도 역시 무척이나 평온해 마음에 들었었다. 어느 소설작가는 본격적으로 작품을 집필할 때면 섬으로 들어간다 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좋아하는 동요 “섬집 아기”는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도 참 서정적이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섬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가 이렇다 보니, 학부모 등 3 명이 구속되었다는 최근 섬마을 초등교사 성폭행 사건은 그만큼 충격이 너무 크다. (http://www.yonhapnewstv.co.kr/MYH20160630001000038/?did=1825m)
하마터면 묻혀버릴 뻔한, 학교 전담 경찰관들이 자신이 보호해야 할 여고생을 성폭행한 사건도 그렇다. 그나마 이 사건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인 소수 문제적 성격의 소유자들에게 국한된 일이라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 위로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물론 뒤이어 언론을 도배하고 있는 연예인 박 아무개 성폭행 피소 사건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SNS와 인터넷은 이 사건 전담 경찰 팀 인력이 12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들끓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된 사안인 만큼 인원을 늘려 사건을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한다는 방침” 때문이라는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690) 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
아마 심각하긴 해도 몇몇 개개인들의 일탈 행동처럼 보이는 사건에 대해서는 요란떠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정작 우리 사회 권력층의 구조적인 치부를 보여주는 사건, 이른바 검사장 출신 그리고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등이 불법로비로 천문학적인 수임료를 챙겼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검찰 수사가 퍽이나 부실해 보이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리라. 2011년 퇴임 당시 신고 재산이 13억 원이던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그 사이 오피스텔만 123채에 50억대 상가 소유주가 되었다 하니,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는 변호사들의 앓는 소리는 그야말로 앓는 척한 "헛소리"에 불과했나 보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0526000306)
뿐만 아니라, 한 현직 검사장은 일반인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비상장 주식을 대량 매집하여 자기돈 한 푼 안들이고 120억 이상의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보도까지 나오더니, 급기야 부장검사의 치욕적인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2년차 검사의 절망에 찬 카톡 내용까지 … 무얼 배운 사람들의 집단이기에 가능한 일인지 ...
한 언론은 “이 두 사건을 보면서 이 땅의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대다수 흙수저들은 절망과 좌절"로 "탄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책으로 ①청와대에 파견하는 현직 검찰의 연결고리 차단, ②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신설, ③검ㆍ경 수사권 분리 등 검찰만이 기소할 수 있는 기소독점주의 폐지, ④검찰 내부 조직의 전근대적 행동강령인 검사동일체의 원칙의 과감한 철폐 등을 제시했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450283)
인문학도가 이 같은 대안들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다(③번은 별로 같다. 성폭행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이 아직 우리 경찰 수준인 거 보면 ... ). 하지만 기사가 놓치고 있는 것 몇 가지는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 이미 2천 4백여 년 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법'이라고 선언하고 그 법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듯이, 제도의 완벽한 구비가 곧 그 사회가 건강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접하기 끔찍스런 보도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과하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난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어느 역사 전공자의 말처럼, 적어도 해방과 동란을 거치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 6~80년대에도 위와 유사한 사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일들이, 아니 더한 일들도 언론에 거의 보도조차 되지 않았던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이는 개인의 가족사만 봐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한 나라의 일반사가 육칠십 년 세월에 진보했다 한들―'진보'라는 말이 거슬리면 '변화'라고 해두자―얼마나 변했겠는가?
그러니 몹시 갑갑하긴 하더라도 너무 우울해 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