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는 이 획기적인 종교 비판서에서 종교의 초자연적인 신비로 간주되는 것의 기초에 아주 단순하고 자연적인 진리가 놓여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의 근본 테제는 다음과 같다: 무한자에 대한 의식으로서의 종교는 실제로는 인간의 자기 자신의 무한한 본질에 대한 의식이다. 종교의 내용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것이다; 고로 신학은 감추어진 인간학이며, 신적 본질의 비밀은 인간 자신의 본질이다. 많이 증보 수정한 2판과 3판의 서문은 2개의 장(“인간의 본질 일반”; “종교의 본질 일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이 저서는 두 개의 주요 부분(“종교의 진정한, 즉 인간학적 본질” - 기독교 신의 속성을 발생적이고 비판적으로 또 심리학적으로 그 인간학적 내용들에게로 귀속시킴; “종교의 참되지 않은, 즉 신학적 본질” - 기독교의 자기모순적 교의를 밝힘), 그리고 하나의 부록을 포함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의 유에 고유한 본질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발달시킨다. “인간의 본질 일반”은 인간의 혼인 동시에 그를 지배하는 세 가지 힘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성, 의지, 감정이 그것들이다. 인간은 자신을 사고의 객체로 만들고 그것에 자신의 고유한 본질 규정들을 부여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대상화시킨다. 그러므로 F에게 있어 신학의 내용은 일종의 정신병리학적 투사(psychopathologische Projektion)이다. 또 인간은 자신을 이 대상화된 것의 객체로, 즉 하나의 주체로 변화된 본질의 객체로 만든다. 이때 다신교에서는 인간으로부터 이끌어낸 인간의 모든 개별적이고 본질적 힘이 하나의 고유한 본질(존재)로 독립하게 되어 신격화되며, 반면 일신교에서는 인류의 모든 속성들이 하나의 신적 본질(존재)로 투사된다. 그러므로 그렇게 산출된 신적 형상의 힘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적인 본질의 자기 자신에 대한 힘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떠한 초인적 절대자도 생각해낼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넘어서, 즉 자신의 유의 지평을 넘어서 바라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적 표상들은 한갓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en)이며, 신의 본질 규정은 인간 본질로부터 길어낸 규정들로서 드러난다. 그런데 만일 신에 관한 수식이 신인동형론이라면, 그 수식어의 주체(주어) 또한 신인동형론이며,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기의식이다. 신적 형상들 내지 종교들 사이의 다양성은,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다양한 규정성 안에서 파악하고 있는 바 그 다양한 규정성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종교의 발달 과정은 인간 문화의 발달 과정과 동일하다. 그러나 종교적 인간은 신이 인간의 외화된 본질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의 결핍 안에 본래적인 “종교의 본질”이 놓여있다. 종교적 인간은 허영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개별성의 부끄러운 한계를 그 자체로는 한계가 없는 인간 본질의 한계로 만들며, 구체적인 개인으로부터 분리해 낸 본질을 스스로에게 그 자신과는 다른 고유한 신적인 본질로서 대상화시킨다. 이렇게 종교는 인간의 최초의, 그러나 단지 간접적인 자기의식인 것이다.
이러한 기본 사상을 F는 그의 저서 첫 부분에서 신의 일련의 속성들을 분석함에 의해 증명하고자 한다: 헤겔에게서처럼 여기서도 전면에 등장하는 기독교의 신은 다양한, 부분적으로는 서로 모순되는 술어들을 가지는 바, 그것들은 인간 본질의 다양한 힘들에 상응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신적인 술어들의 풍요로움은 인류의 무수히 많은 다양한 개인들에 의한 것이다. 세계에 앞서며, 자존적, 필연적이고, 무한하며, 비물질적인 본질(존재)로서의 신은 결국 인간 오성(Verstand)이 대상화된 본질이다. 반면 도덕적으로 완전한 본질로서의 신은 도덕적 선의지를 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은 단순히 형이상학적 내지는 능동적(richtendes) 본질(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되어버린, 고뇌하는 신이며, 특히 사랑하며 감각하는 본질이다. 그것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죄를 용서하며, 그의 기도에 귀 기울이고,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기적으로써 돕고, 궁극적으로 그를 구원하며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한다. 그래서 종교적 인간은 신의 활동을 자신의 구원 수단으로 삼는다. 인간은 신을 의도하며(bezwecken), 신은 인간의 구원을 의도한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을 통해서 단지 자기 자신을 의도한다; 종교는 결국은 단지 인간만을 숭배한다.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교의(육화, 수난, 부활)와 결정적인 요소들(기도, 기적, 섭리)은 고로 인간의 감각이고, 마음이며 심성이다. 신은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사랑이며, 인간 마음이 현실화된 소망이다. 그리하여 신은 무엇보다도 인간 상상력과 주관적인 자의(Willkür)의 힘의 표현이다. 종교적 인간이 신 안에서 인간의 사랑을 대상화시키는 것은, 그 사랑이 인간에게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하나의 성질은 신이 그것을 소유하기 때문에 신적인 것이 아니라, 그 성질이 그 자체로 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신이 그것을 가지는 것이다. 신은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그 신 속으로 외화된 모든 긍정적인 인간적 성질들의 총체이다.
F는 육화에서 신이 지니는 인간성의 현상을, 수난 속에서 신의 인간에 대한 친절의 계시를, 삼위일체 속에서 (성신 대신에 마리아와 함께) 공동체 삶 내지 가족 삶의 신성화를, 무로부터의 창조 속에서 전능함에 대한 인간 소망의 표현을, 기도 속에서 인간의 모든 소망을 충족시키는 자기 자신의 심성과의 대화를, 섭리와 기적과 부활과 영혼불멸 등에 대한 신앙 속에서 자연법칙의 하찮음과 주관적인 심성의 절대적인 타당성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을 [각각] 발견한다.
그의 작품 2부에서 F는 신학, 삼위일체설, 성사이론 등의 모순들이, 종교가 자신의 인간학적 언표들을 신학적으로, 즉 초자연적으로 오해한 데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때 결정적인 모순은 종교의 참된 그러나 숨겨진 본질을 계시하는 사랑과, 종교의 거짓된 그러나 의식된 형식을 이루는 신앙 사이의 모순이다. 신앙은 교만하고, 명령적이며, 독단적이고, 당파적이며, 비관용적이고, 또 이러한 속성들로 인해 아무런 적도 만들지 않는 사랑에 대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인 것, 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사랑을 거짓인 것, 신학적인 것으로서의 신앙으로부터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F의 종교에 대한 관계는 따라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종교의 인간학적 뿌리에 대한 통찰이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세계사 속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하리라는 희망으로 끝맺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사랑은 인간에게 현실적인 것이 되고 또한 신학적인 매개 없이도 최고이자 첫 번째인 법칙이 된다: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
- 이러한 F의 반 사변적이고 반 유신론적인 주저서는 그의 이름을 갑자기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1840년대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신랄하게 공격받았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진 해방적인 효과로 인해 열렬하게 수용되기도 했다. 그것이 제안한, 신학의 인간학으로의 해체는 19세기와 20세기의 종교비판 (니체, 프로이드) 동기를 선취한 것이지만, 20세기 신학의 대변자들(바르트, 본회퍼, 로빈손)에 의해서도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이들은 형이상학적, 전통 신학에게서 개인들 간의 관계와 인간적인 것들에 관한 이해(Substanz)의 결핍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Roberto Garaventa, in: Großes Werklexikon der Philosophie, hg. v. Franco Volpi, Bd.1, Stuttgart 1999, S.475-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