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늙음'은 역시 금지된 주제이다. [심지어 본인 자신에게조차도!]
<9> 노인들에 대하여 사회가 취하는 태도는 하나같이 모두 이중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어떤 분명한 연령 계층으로 보지 않는다. ... 노년기가 시작되는 순간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가 있다. 또한 이 새로운 지위의 확립을 기리는 [성인식과 비슷한] '통과 의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도 환갑 같은 행사는 사라진 지 오래니까.. 뭐 맞는 말 같다.] ...
<10> 실질적으로 사람들은 노인들을 별개의 범주로 치지 않는다. 게다가 노인들도 그러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노인들의 경제적인 지위를 결정할 때 보면, 사람들은 노인들을 이질적인 종류에 속하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 노인들도 다른 인간들과 똑같은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인간들과 똑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얼마 안 되는 보잘것없는 적선을 하고는 스스로 그들에 대한 의무를 충분히 다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편리한 환상이다. ...
<11> 젊은이들과 똑같은 욕망, 감정, 요구 등을 표명하는 노인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게 된다. 노인들의 사랑과 질투는 추하거나 우스꽝스럽고, 성 행위는 혐오스러우며, 폭력은 가소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노인들은 모든 미덕의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평정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평정함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한다. 이러한 사고 방식 때문에 노인들의 불행에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노인들에게서 요구하는 그들 자신의 승화된 이미지, 그것은 백발의 후광에 싸인 경험이 풍부하고 존경할 만한 인간, 인간 조건을 저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현자이다. 노인들이 그런 이미지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게 되면, 그들은 형편없는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하여 첫 번째 이미지에 대립되는 이미지가 부여된다. ... 노망...
<12> 우리는 이러한 노인 추방을 너무 멀리까지 밀고 나가, 결국에는 그것이 우리들 자신을 거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늙는다는 것보다 더 자명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심지어 세금보다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또한 그것보다 더 예상 외인 것도 없다.
<13> 건강을 잘 간직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늙음이 가져오는 신체적인 노쇠는 눈에 금방 드러난다. 인간이라는 종은 살아온 햇수에 따른 변화가, 구경거리가 될 만큼 가장 두드러지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옆구리가 홀쭉해지고 쇠약해져도 모습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변한다. 우리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 옆에서 거울에 비친 그녀의 미래의 얼굴과도 같은 그 여인의 어머니를 볼 때 가슴이 메인다. ...
<14> 우리는 연로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바로 우리 자신의 미래의 모습 앞에서도 미심쩍어한다. 저런 일은 내겐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터무니없는 어떤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속삭인다. 저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 그건 내가 아니라고. 늙는다는 것은 그것이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기 전에는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만 관계 있는 것이다.
<17> 늙는다는 것은 개인이 시간과 맺는 관계를 변경시킨다. ... 다른 면에서 보면 인간은 절대로 자연 상태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육체조차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21)] 어느 연령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년기에도 한 개인의 지위는 그가 속한 사회가 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18> 한 사회 안에서 노년이 지니는 의미나 무의미는 그 사회 전체를 문제 삼는다. 왜냐하면 노년을 통해서 이전의 전 생애의 의미 혹은 무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22> 신체와 정신은, 상호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유사한 발전상을 따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신체적 퇴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신적 손실을 상당히 겪을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정신적인 쇠퇴 기간에 지적인 이득을 꽤 실현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113> [역사를 돌아보면] 노인이 자격을 얻는 것은 바로 기억력 덕분이다. ...
<114> 노인만이 족보를 기억하고 있어 그 사회 속에서 각 개인이나 각 가정의 합당한 위치를 지정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틀 문명은 노인을 잉여 존재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116> 가장 중요한 사실은 노인들의 지위는 스스로 '획득되지' 않고 '부여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