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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의존성과 수동성

Kant 2022. 8. 1. 16:05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특징이다. 인간은 신체를 통해 존재하며 사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년기뿐만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

인간은 본성상 한계가 있고 취약하며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하므로 스스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고 타인의 도움과 지지와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존성은 심리, 감정, 의료, 경제, 정치, 기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분업이 일어나고 있는 복잡한 사회에서 개인은 여러 영역에서 특히 타인에게 의존한다(Fine and Glendinning 2005, 604, 612). 이러한 맥락에서 삶은 긴밀한 상호의존적인 네트워크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에서 타인과 공유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정상이며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특징이다.

 

고대부터 서양 문화에는 의존성을 평가절하하는 전통이 있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 Nicomachean Ethics IV 1124b 9 이하를 참고할 것. 매킨타이어(MacIntyre)는 서양 도덕 철학의 전통이 우리를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게 만드는 우리 실존의 신체적 차원에 대한 적절한 인간학적 숙고를 무시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치매는 통상 인간의 진정한 삶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특성으로 간주되는 것의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가져오는 의존성 역시 서구 문화의 가장 중심적인 가치 중 하나인 자율성, 독립성 및 자족성으로 이해되는 것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다루기 힘들다고 여기는 것은,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느낌이다. 아무도 그런 부담을 원하지 않는다.

 

삶은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실현되고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다(Teising 2017, 46). 독립성과 의존성 사이에는 적대적인 양자택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전자는 추구해야 하고 후자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정적인 질문은, 오히려 어떻게 우리가 평생 동안 독립성과 의존성 사이의 변증법적 역학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가다(Baltes 1996, xv).

 

“자아가 된다는 것은 의존성과 독립성이라는 끊임없는 긴장을 안고 사는 것이다. 전자는 후자만큼이나 우리의 일부다. 후자는 기분을 더 좋게 해줄 수 있으며 확실히 우리에게 더 아첨을 떤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우리 삶의 절반에 불과하다.”(Callahan 1993, 144).

 

의존성을 피상적으로 읽을 경우 우리의 공통된 인간 운명을 망각하게 될 위험이 있다. 우리는 모두 한때 의존적이었고, 다시 그렇게 될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렇다. 성인기의 시력 상실증은 독립성이라는 환상에 도취된 것 []. 불간섭을 포함하여 독립성에 대한 자기애적인 환상을 영구화하는 것은, 우리 문화가 그렇듯,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우상화하는 문화에 빠질 수 있는 엄청난 도덕적 위험을 수반한다”(Moody 1998, 121).

 

관계는 인간의 현실에 부가되는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 본질이다.”(Härle 2005, 435) 그것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의 핵심이다.

 

오늘날의 노인학에서도 주요 규범 개념 중 하나는 이른바 능동적인 노화”(active aging). 능동성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인간 존재가 수동성이라는 근본적인 차원으로 특징지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 차원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출생과 죽음, 질병과 행운, 사랑과 도움과 같은 경험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이러한 수동적 차원은, 강점과 약점을 지닌 우리의 몸이 주어져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인식될 수 있다. Jean-Pierre Wils에 따르면 인간의 실존은 행동의 모든 자율성을 선행하고 제한하는, 근본적인 수동성에 의해 표시된다(Wils 2004, 45). 의존성과 마찬가지로 수동성도 인간 삶의 모든 단계 안에 존재하는 구성적 특징이다.

 

Leopold Rosenmayr는 삶의 수동적 차원에 대한 개방성을 노년기의 사추기(思秋期)적 성장(maturescence, 중년 이후 겪는 성장 경험)에 고유한 한 측면으로서 확인한다. 이것은 성숙(maturity)과 달리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다. Rosenmayr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절대적인 성숙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그들은 성숙의 끝없는 과정을 계속할 수 있을뿐이다(Rosenmayr 1990, 159).

 

근본적인 인간학적 현상으로서의 수동성은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다. 단순히 에너지나 활동의 부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바람이나 이상에 따라 현실을 바꾸거나 영향을 줄 필요를 느끼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적 자유의 표현이다. 수동성은 우리가 바라던 것이 아니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직면하는 모든 것을 건설적인 방식으로 직면할 수 있는 개방성과 내적 자유를 의미한다. 고전 철학 전통의 용어로 수동성은 체념(resignatio)을 의미한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노년기의 수동성을 명상적인 삶(vita contemplativa)(Hesse 1972, 205)이라고 말했는데, 삶에 대한 철학적 태도로서, 초탈(超脫, detachment)과 참여, 관심과 사물을 놓아버리는 자유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것은 평온함의 정신 속에 있는 일종의 능동적 수동성이다(Strässle 2013, 36). 그러한 태도는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미덕이며 노년에 얻을 수 있는 소득이다. 대니얼 캘러한(Daniel Callahan, 1993, 151)에 따르면, “인생을 놓아 보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풍부하고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끝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 그리고 죽음과 관련해 노쇠에 더 잘 대비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의존성과 수동성은 자율성과 능동성에 대한 추구만큼이나 의미 있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요소(Wils 2004, 55).

 

Heinz Rüegger, “Beyond Control. Dependence and Passivity in Old Age”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