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의 새 leader로 뽑힌 Ed Miliband(69년생)과 4살 위인 그의 형 데이비드 밀리반
형제로 태어나 같은 스쿨(Haverstock School)과 같은 대학(Corpus Christi College, Oxford)에서 같은 전공인 철학(PPE)을 공부한 것까지 정말 희한한 이력의 인물들이 아닐 수 없다.
에드는 토요일 치뤄진 당수 선거에서 불과 1%를 조금 넘는 차이로 형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결과 발표를 듣고 바로 동생에게 다가가 축하의 포옹을 하는 데이비드의 표정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추측컨대 대부분의 아시안들은 현장 상황을 전하는 어느 기자의 코멘트처럼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은 죽을 맛"일 형의 모습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싶다. 하지만 정작 영국 언론은 결과에 승복하고 동생에 대한 지지를 재삼 확인하는 형의 태도를 그저 담담히 전하는 분위기다.
현 정부의 두 수장인 보수당의 캐머런과 자유당의 클렉보다도 어린 에드는 연립정부가 해체될 경우 새 수상 자리까지도 넘볼 수 있게 되었다 하니, 노쇠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영국은 블레어 이후 영민한 젊은 지도자들이 정치를 이어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이곳의 정치판에 어두워 전후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으나 보수당 총재까지 지냈던 이안 던컨 스미스 같은 사람이 젊은 수상을 뒤에서 밀어주고 기꺼이 그의 내각에서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Work and Pensions)을 맡는 모습이나, 자유당 부총재였던 John Vincent Cable 같은 인물이 기회가 될 때마다 나이상으로 거의 자신의 아들 뻘인 클렉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부러운 생각이 앞선다. 얼마전 국내 여당의 이른바 몇몇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당했다는 불법사찰이, 당내 실세에게 "2선 후퇴를 요구한" 그들을 "괘씸죄’로 응징하기 위한 "충성파"의 "뒷조사와 앙갚음"일 수 있다는 언론 보도와 너무도 대조되기 때문이다.
가족 내에서 '가위바위보'든 '팔씨름'이든 합의를 통해 후보를 단일화하지 않고 경선 끝까지 양보없는 경쟁을 치룬 밀리반 형제의 경우도 우리 시각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본인이 자신의 능력을 확신함에도 한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능력 발휘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오래된 영국의 개인주의 전통에서 보면 어리석은 짓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다.
나 왈, "그래도 그렇지 친형인데 동생이 양보하는 게 순리 아니었을까?" 유가적 가치관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 나이 정도의 한국인 눈에 비친 에드 밀리반은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게 아닐까?
와이프 가라사대, "동생 와이프 입장이라면 절대 그렇지 않을 걸요." (에드는 아직 미혼이라고 들은 것 같다. 여친과 아이는 있지만)
그래. 다시 생각해 보니 와이프 생각이 좀 더 옳은 것 같다.
제3자라면, 또 영국 국민이라면, 역시 조금이라도 더 능력 있는 정치가한테 나라 살림을 맡기는 게 낫겠지. 단순히 몇 년 더 살았다고 반드시 더 나은 지도자 감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에드의 별명이 "레드(Red) 에드"라는데 - 그의 아버지 Adolphe Miliband (나중에 Ralph Miliband로 개명)는 네오 맑시스트로 The Power Elite 라는 저서로 한때 우리에게 친숙했던(?) Charles Wright Mills와 친구였다 한다. - 노동당의 정책이 향후 얼마나 좌측으로 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