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유산과 신분제 사회
영국이란 나라에서 묘한 부분을 열거하자면 수도 없을 것 같다. 자동차 핸들 위치나 차 운행 방향이 반대라는 거야 잘 알려진 일이지만 (가전 기구 플러그 모양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라 은근히 불편하다), 사회 구조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신분제 사회의 특징이 다분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근대식 의회 민주주의를 처음 정착시켰던 영국이 신분제 사회?
왕실의 권위를 이어오고 있는 전통이야 그렇다 치고, 학교교육에서 사립과 공립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 차별에 이른다. 영향력 있는 사회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명문 사립학교와 옥스브리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마치 과거 유럽의 상류층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사교와 비즈니스를 이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듯 제 할 일만 하며 사는 워킹 클래스들.. 묘한 대조다. 옥스포드의 오래된 대결 구도 "타운(town)과 가운(gown)"도 그 축소판이라 볼 수 있을 법하다.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대에게 기습 공격을 받은 왕자부부의 당황한 모습을 보며 혹시 그런 대결 구도가 과격화 되어 사회 전체로 번질 수도 있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연립 정권의 한 축인 자민당의 대표 닉 클렉은 선거 때 스스로 내세운 공약을 깨고 등록금 인상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언론의 시선은 차갑다. 채널4 뉴스의 존 스노(Jon Snow)는 내 속이 다 후련해질 만큼 부총리를 닥달해댔다. 네 자신이 거짓말하는 정치인들 찍지 말라고 해놓고 이게 뭐냐라고 호되게 책망하는 언론인이 있는 영국이 부럽다. 클렉의 정치 생명이 위태로와 보인다.
최근에서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좋아하고 마치 그들의 국민철학자라도 되는 듯 애지중지하는 옥스포드의 철학적 분위기도 영국의 신분제 사회 전통과 밀접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정치학이 말하는 정의란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합리적인 능력을 계발한 정도에 철저히 상응하는 신분과 대우를 보장하는 질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인간 그룹이 그렇지 못한 그룹을 지배하고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학기 내가 아리스토텔레스 수업을 들은 바로 그 오리엘 컬리지 출신 중에 유명한 로즈도 있는 게 아닌가!
옥스포드의 Rhodes 재단 건물
남아프리카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로 거부가 되었고 로즈 재단으로 유명한 Cecil John Rhodes(1853 – 1902) 역시 오리엘 컬리지에서 공부한 적 있는 제국주의자였다.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Send forth the best ye breed--
Go bind your sons to exile
To serve your captives' need;
To wait in heavy harness,
On fluttered folk and wild--
Your new-caught, sullen peoples,
Half-devil and half-child.
...
(Rudyard Kipling, The White Man's Burden, 1899)
신분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워킹 클래스 구성원들의 불만을 상쇄시킬 수 있는 당근과 지도층의 의무 이행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2천수백여년 전에 당시의 하이 클래스에게 가르쳤던 내용이다.
그렇다면 캐머런이나 클렉 등 연립정권 수반들의 주장과 달리 등록금 인상으로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릴 기회가 좌절되었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왕실을 상대로 행한 거친 시위 행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안주해 온 영국사회에 대한 변화 요구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국 일반 국민들이 지도층에게 꾸준한 인내심을 발휘할지 아니면 최근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유사한 상황이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왕실 결혼식이 기대되는 이유다.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Send forth the best ye breed--
Go bind your sons to exile
To serve your captives' need;
To wait in heavy harness,
On fluttered folk and wild--
Your new-caught, sullen peoples,
Half-devil and half-child.
...
(Rudyard Kipling, The White Man's Burden, 1899)
신분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워킹 클래스 구성원들의 불만을 상쇄시킬 수 있는 당근과 지도층의 의무 이행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2천수백여년 전에 당시의 하이 클래스에게 가르쳤던 내용이다.
그렇다면 캐머런이나 클렉 등 연립정권 수반들의 주장과 달리 등록금 인상으로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릴 기회가 좌절되었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왕실을 상대로 행한 거친 시위 행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안주해 온 영국사회에 대한 변화 요구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국 일반 국민들이 지도층에게 꾸준한 인내심을 발휘할지 아니면 최근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유사한 상황이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왕실 결혼식이 기대되는 이유다.